신앙심과 재능, 실험정신과 열정으로 LA 한인 소극장 문화를 이끌고 있는 극단 이즈키엘

Maron D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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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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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교회에 다니지 않았다. 선물을 받기 위해 동네 교회에 성탄절에만 몇 번 가본 경험이 전부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잠원동의 제법 큰 교회에 간 적이 있다. 학교에서 기타를 잘 친다고 소문났던 친구가 속한 성가 밴드가 공연하기 때문이었다. 마치 지금의 K -Pop 댄스음악처럼 그때는 청소년들에게 록음악의 인기가 절정이어서 어느 학교나록밴드 하나쯤은 있던 시절이다. 그래도 교회에서 성가를 록이라는 장르로 연주한다는 사실은 꽤 신선했다. 왜냐면 보수적인 어른들 특히 기독교에서 록음악은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심지어 사탄의 음악이라고까지 불렸기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공연은 정말 좋았다. 찬송가 하나 변변히 모르던 내가 성가 연주에 깊은 감명을 받을 정도였다. 대학에서 전공한 신문방송학적 표현을 빌리자면, ’메시지’를 전하는 ’미디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체험한 현장이었다. ‘나이롱 신자’ 였던 고등학생을 교회로 이끌었던 것은 록이라는 장르였고 10번, 100번의 설교보다 강렬한 영적 체험을 현장에서 느꼈던 근본은 그 친구의 빼어난 기타 실력과 밴드 멤버들의 멋진 연주였다. 그런 면에서 극단 이즈가엘 기사를 쓰면서 30년 전 그 공연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2013년 창단 이후 작품성과 화제성을 갖춘 작품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 LA의 전문 기독교 공연예술 단체인 LA의 극단 이즈키엘(단장 전수경)을 높이 평가해야 할 부분은 많다. 성도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공연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취지, 전문 기성 극단 못지않게 꾸준히 새로운 창작 작품을 선보이는 창의력, 장기 공연을 이어갈 수 있는 각 분야 전문 연극인들의 기량과 열정, 공연 수익을 모두 기부하며 극단의 목적에 충실해 온 나눔의 정신 그리고 한인뿐만 아닌 타인종 심지어 타 종교인들에게도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진취성 등. 하지만 성극이라는 형식과 내용을 뛰어넘으려는 부단한 시도와 실험성이야말로 이즈키엘을 단순히 기독교 극단으로 한정할 수 없는 예술적 평가의 부분이다.

이즈키엘의 도전 정신은 2013년 창단 공연 <만남>에서부터 확인된다. 1.5세 전문 연극인들이 참여한 <만남>은 ‘기독교 연극의 고정 관념을 깨트린 날카로운 예술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미주 한인 성극 최장 공연 기록을 세웠다. 연출자는 전통적인 내러티브가 아닌 각 주인공의 대화를 통해 내용을 전개해 가는 실험극 형식의 이 작품을 통해 “누구나 한 번쯤은 기독교에 관해 궁금하던 질문들이 하나씩 풀려가면서, 관객들은 전혀 성극 같지 않은 재미있는 연극 한 편을 관람하며 복음의 정체성을 찾아갈 것”으로 기대했고, 이런 의도와 기대가 4개월이라는 장기공연이라는 성과로 결실을 본 것이다. 창단 극 <만남>은 형식의 실험성과 함께 공연장과 관객의 지평을 넓히는 시도 역시 돋보였다. 남가주 농아 관객들을 위한 수화 동시 통역 극을 공연했고, 치노힐 주립 교도소를 방문해 외국인 크리스천 재소자들을 위한 영어 버전을 공연하기도 했다.

기획을 맡은 김유연 씨는 “교도소를 선교지로 인식하지 않는 교회들이 대부분 이어서 갇힌 자들에 대한 사회의 관심, 교회의 관심, 성도들의 관심이 절실하다”라고 재소자 공연의 취지를 밝혔다. 이런 취지에 돋보이게 <만남>의 수익금은 재소자를 위한 단체 ‘뉴호프 미션’에 기부되기도 했다. 이즈키엘은 2013년 창단 첫해 ‘만남’의 장기 공연을 이어가는 와중에 또 다른 작품도 준비했다. 그래 12월에는 제2회 정기 공연 성탄 극 <그 맑고 환한 밤중에>를 공연해 역시 수익금 전액을 ‘굿 사마리탄 홈’에 기부했다. <그 맑고 환한 밤중에>는 기획 단계에 다섯 명의 작가와 연출가가 20분 분량의 크리스마스 코미디 단막극을 보여주는 옴니버스식 작품을 목표로 했다. 역시 전통적 형식의 정극이 아닌 참여와 소통,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의 효과를 기대한 코미디 연극을 추구한 것이다.

인류의 모든 텍스트 가운데 가장 권위 있고 신성한 바이블의 내용을 주제로 삼으면서, 그리고 일반적인 관객들 보다 훨씬 보수적인 성향인 기독교인들을 중요한 관객으로 하는 공연을 만들면서 이즈키엘은 왜 전통적이고 안전한 방법이 아닌 실험성을 우선으로 추구하는 것일까? 심지어 한 작품의 경우엔 공연에서 흡연 장면까지 등장해 일부 관객들에게 불편함까지 주었을 정도로 이즈키엘은 기독교 연극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트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술적인 의욕이 너무 넘쳐서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전수경 단장은 이렇게 시작했다. “저 같은 사람에게 전도하기 위해서는 평범한 작품으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지금은 독실한 신자인 전 단장은 늦은 나이에 하나님을 믿게 된 사람이다. 기독교에 대해 무심한 정도가 아니라 일부 교회와 교인들의 전도 방식에 반감을 품는 많은 일반인 중의 하나였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 팻말로 대표되는 강압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분위기 있잖아요. 그리고 그런 극단적인 부분 말고도 많은 목회자와 교인들이 가진 율법적이고 오직 교리에만 충실한 닫힌 태도가 저를 기독교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교인이 되기 이전에 자신이 기독교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있었는지를 알고 있으므로 신도 만이 아닌 일반인들을 주요 관객으로 하는 이즈키엘의 연극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깊이 고민했고, 그런 고민에 대한 결과가 신선하고 실험적인 형태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기독교 예술 단체로서 우리의 목적이 신앙이지만 극장에 오는 관객들은 설교를 들으러 오는 것이 아니고 한편의 무대 예술을 보러 오는 것이죠. 말씀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형태의 공연이라도 반드시 관객에게 주어야 할 재미와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공통된 목표를 모든 극회원들이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좋은 말씀을 연극으로 전한다’라는, 즉 공연의 목적이 의미가 있고 내용이 신앙적이라는 것을 내세워 무대 예술이 가져야 할 퀄리티를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연출자와 배우의 각오가 처음부터 남달랐다. 그래서 이즈키엘은 첫 공연부터 관객에게 입장료를 받았고 일부 관객들은 “성극 보러 오는 데 돈을 내야 하느냐?”라고 볼멘소리를 내기도 했다.

전 단장은 “좋은 공연은 배우뿐 아니라 관객도 준비가 되어야 완성이 된다.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돈을 투자하겠다는 마음의 관객이 많을 때 공연의 질은 훨씬 향상된다”라고 믿었다. 실제로 <만남>은 “매 회마다 감동된 관객들이 눈물을 흘려서 연기하는 배우들이 오히려 관객들을 보며 은혜를 받았다”라며 “배우가 관객이 된 연극이라는 별명이 붙었다”라고 전 단장은 말했다. 초대권이 없으면 공연을 보지 않는 한인 커뮤니티의 척박한 무대 예술 풍토에서 이즈키엘의 공연은 매번 매진 행렬을 이어갔고 심지어 표를 가지고도 자리가 없어서 돌아가는 관객까지 생기는 성과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창단 이후 4년간 이즈키엘의 활동은 기성의 전문 극단 못지않게 열정적이었다. 2번의 정기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듬해 2014년 1월 기독교 예술인을 위한 이즈키엘 정기 워크숍을 개강했고, 4월에는 창작 뮤지컬 <마루 마을>을 공연했다. 창립 작품의 <만남>의 각지 초청 공연을 이어가면서 <마루 마을> 역시 팜스프링스를 비롯한 각지에서 선보였다. 2015년 제4회 정기공연 옴니버스 성극 <문>을 이즈키엘 소극장에서 공연하고 수익금 전액을 재소자 가정 어린이들을 위해 ‘소망의 샘’에 기부했다. 5회 공연으로 옴니버스 연극 <문>을 무대 위에 올렸고, 그해 10월에는 사극이라는 형식에도 도전해 제5회 정기공연으로 퓨전 사극 <살로메>의 프리뷰 공연을 올렸다. 2016년 초에 선보인 제6회 정기공연은 미스터리 2인극 <귀향>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9월 이즈키엘의 장기 공연 화제작인 <청년 예수>는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대한 또 다른 도전이었다.

이처럼 전문 예술인들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한 워크숍과 1년 2회의 공연을 숨 가쁘게 지속하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등 종교 단체들이 무대를 제공하고 배우와 스태프들이 재능기부로 가능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전 단장은 자비를 지출해왔다. 연극이라는 장르 자체가 가진 비상업성과 여전히 척박한 한인 커뮤니티의 공연 예술 풍토에서 이즈키엘이 계속 성장할 힘은 역시 “하나님의 은혜”다.

“남자가 군대 얘기하면 끝이 없고 여자들이 아이 낳은 경험 얘기하면 끝이 없잖아요? 마찬가지로 공연 기획자와 연출자들, 배우들이 공연을 준비하고 올리면서 겪는 어려움을 토로하자면 며칠 밤을 새워도 모자라겠죠. 제작비, 늘 어려운 부분이죠. 하지만 돈 문제는 오히려 우리가 겪었던 어려움에서 가장 쉽게 넘어간 문제라고 할 수 있어요.” 전 단장은 작품 하나를 무대에 올리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얼마나 많은지 이렇게 표현하면서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우리를 이끌어주실 가장 큰 힘이다”라고 확신한다.

이즈키엘은 올해 또 한 번의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가을부터 공연한 <청년 예수>의 영어 풀 버전을 준비하고 있다. 2시간의 분량과 20곡 이상의 노래가 나오는 뮤지컬 <청년 예수>는 1910년 일본강점기가 주요 배경이다. 한국이 식민 시대를 로마가 이스라엘에 대해 식민통치를 하던 시대적 배경에 빗대어 기독교 복음과 예수의 공생애 사역의 의미를 해석한 작품이다. 이미 2세 관객, 외국인 관객을 위해 무대에서 영어 자막을 제공해왔지만, 전극을 영어로 공연하는 시도는 처음으로 외국인 관객은 물로 종교가 다른 관객에게도 어필한다는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이즈키엘은 창단부터 ‘생명의 예술’을 지향해왔다. 전 단장이 생각하는 ‘생명의 예술’이란 어떤 예술인지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이 불어 넣어진 자들이 전하는 예술이라는 뜻입니다. 그냥 육체로 숨 쉬는 생명이 아니고 영이 살아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명을 뜻하죠.” 언어와 글자가 없던 시절, 하나님의 존재를 모르던 아주 오래전 부터 인간은 ‘절대자’를 경배하는 의식을 했다. 그들은 몸과 소리와 춤과 그림으로 자신들의 마음을 신에게 보여줬다. 그들 중 재능이 뛰어난 자들의 흔적은 오늘날까지 남아 현재의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우리는 그것을 기꺼이 ‘예술’로 인정한다. 예수님의 출현 이후 비로소 사람들의 예술적 재능은 지향해야 하는 목적지를 뚜렷이 갖게 되었고 단순히 육체로 표현한 것이 아닌 살아있는 영으로 만들어 낸 예술이 나타나게 되었다.

‘생명의 예술’에 대한 전 단장의 설명을 이렇게 해석해도 괜찮을 것같다. 교인들은 신앙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돈을 기꺼이 바친다. 그 시간과 돈보다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은총은 너무나 크다고 교인들은 믿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교인들은 남들이 갖지 못한 재능을 바칠 수 있다. 생명의 예술을 만들 수 있는 재능이다. 당사자들에게는 힘들고 지난한 과정의 연속이지만 그 결과물을 감상하는 이들에겐 그것만큼 부러운 재능과 열정도 흔치 않을 것이다.

“그 재능 또한 누가 주셨을까요? 하나님에게 받은 것을 하나님에게 돌려주는 것일 뿐 남들보다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닙니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전수경 단장의 대답이었다.

S.CASA 편집부